나는 매일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불안감은 문득 가스불을 안 껐다는 사실을 알아채듯이 갑자기 떠오른다. 불안에 예민한 나는 불길한 생각들을 애써 마음 속 어딘가에 넣어두고 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계속 생각하면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샐 수 밖에 없으니,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내 좋지 않은 기억력은 실제로 불안을 잠시 지연시키는 데에 큰 공을 세우고 있다.
미래가 막연해서 두렵다. 미래가 막연하기 때문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른다. 내가 무엇을 준비하든지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잃을까 봐 두렵다. 다시 무기력과 우울에 빠지고 싶지 않다. 불운이 찾아왔을 때 잘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의 꼬리들을 물다 보면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모든 것이 확실했으면 좋겠다. 꽉 닫힌 전망이 제시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대비할 수 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으니까.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면 기쁘게 받아들일 준비를, 나쁜 일이 일어날 거라면 나쁜 일의 다음을 준비하고 싶다.
미래는 막연하다. 갑자기 벼락이 내리쳐서 길 가던 내가 맞아 죽을지, 길바닥에서 주운 로또에 당첨될지, 당장 내일 해고 메일을 받을지 나는 당최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어쩌면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어떤 사건도, 절망과 구원이 될 누군가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행운과 불운은 내가 통제할 수가 없다는 것은 항상 기억해야 한다. 운을 통제하려고 하는 순간, 당신은 불행해진다. 운의 결과는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본디 비관주의자로서, 미래는 빛조차 보이지 않는 블랙홀과 같다 느낀다. 지금 순간의 행복, 즐거움, 웃음이 미래에도 남아있을 지 모르겠다. 그것이 늘 두렵다. 미래가 언제나 불행으로 정해져 있다고 가정하면,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플랜B를 반드시 세워야 한다. 그러나 플랜B가 왜 플랜B인가. A로 정해지지 않은 ‘대체’ 계획이다. 내가 원치 않는 행동을 계획하려고 하니 제동이 생기고, 괴롭고, 힘들다. 장점이 없는 건 아니다. 마음 속에서 안 좋은 일에 대해 항상 대비하고 있으니,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는 그렇게 많이 타격을 받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여러 번 시뮬레이션 했던 장면이니 말이다. 중요한 건, 그 순간에 나는 플랜B 를 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멋진 선택, 나를 위한 선택, 즐거운 선택을 하고 싶다. 하지만 불행에는 플랜B라는 한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 불행을 피해서 다른 안전해보이는 무언가를 강제로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강압적인 불운. 그 앞에서 나는 플랜B를 선택해야 할까?
나의 부족한 점을 안다는 것은 안도이자, 저주이기도 하다. 부족한 점을 안다면 해결책도 알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안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한다, 한 가지 밖에 없다. 만약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게 확정이라면, 반드시 해야만 한다. 만약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럼에도 해야 한다. 혹시 모르니까.
그렇지만 하기 싫다. 피하기 위해,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불공평한 일이다. 마치 미래에 저울이 달려 있는 것 같다.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심장과 깃털을 다는 저울처럼. 재앙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준비를 얼마나 했는지 검사하는.
적다보니 불안은 막연함에서 온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기간 동안의 불안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니, 더 막연한 거였다. 내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당장의 해결책은 쉬운데, 1년 뒤, 2년 뒤, 10년 뒤의 불안을 위한 해결책은 너무 길고 또한 막연하다. 해결책도 막연하고 문제도 막연하다니, 최악의 시험출제관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다 잘 될거야, 라는 말은 아직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 안 될 것 같잖아. 이렇게 말해볼까. 모든 걱정을 오늘 하지는 않아도 돼. 한 번에 하나의 걱정만 하자. 너무 먼 기간을 불안해 하지 말자. 구체적인 해결책이 보이는 불안만 준비하자.
이제 조금 마음이 편하다. 난 이제 내일 걱정만 해야겠다. 모레 걱정은 내일, 내년 걱정은 12월에 할래. 불안도, 걱정도 일단 미뤄야겠다. 그건 확실하게 잘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