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17일

@VERO
Created Date · 2026년 02월 17일 22:02
Last Updated Date · 2026년 02월 17일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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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쓰는 게 좋았다. 내가 쓰는 문장은 언제든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다시 적을 수 있으니까, 나는 그 안도감을 좋아했던 것 같다. 활자는 내가 마음놓고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멋들어진 도구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려주는 스승이었으며, 늘 새로운 것을 알려주었던 벗이었다. 그렇지만 독일에 와서 영어를 쓰게 되면서 나는 내가 사랑했던 어려운 단어와 문학적인 문장, 현학적인 말투를 모조리 버려야만 했다. 당연하게도 한국어로도 어려운 말은 영어로도 어려웠다.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단어와 문장들은 한국어 원어민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 영어 비원어민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 바뀐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내 머릿 속에 떠오르는 문장과 단어들을 간단하게 바꿨다. 내가 아는 영어 단어로 치환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어쩌면 영어 실력은 조금 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제는 생각이 더 이상 예전의 내 생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더 복잡한 단어를 사용해서, 더 정교한 문장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간단하게 바꿔버린 생각의 단어들에서는 내가 의미하고자 했던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다. 너무나도 포괄적인 범주를 가진 단어로는 내가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던 바로 ‘그’ 의도를 담아낼 수가 없다. 문학적인 미사여구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자연스러웠던 책 속의 글귀들이, 단어들이 이제는 희뿌옇다. 결국 나는 한국어로도 얕게 사고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자책하고자 이것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삶에 생기는 문제들을 바라보는 내 태도를 돌아보고 싶은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큰 역경과 문제가 닥쳤을 때, 지금의 방식으로는 이것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고, 기존의 채택되었던 방식은 낡은 방식이 되어 새로운 것으로 교체된다. 언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는 기존에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꿨다. 더 쉽게, 더 빠르게 내 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그것은 실제로 옳았다. 그렇지만 그때 내 방식을 고수했다면 어땠을까? 나를 바꾸지 않고 문제를 내 방식대로 해결해나갔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나는 늘,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를 바꾸려고 하니까. 그것은 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기는 굉장히 좋은 기질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내 자아에 대한 항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항상성이란 생명의 특성 중 하나로 외부 환경 변화와 관계없이 생물체가 내부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특성을 말한다. 내 마음대로 해석하자면 외부의 변화와는 관계 없이 ‘나’라는 존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외부의 변화에 따라 이렇게 쉽게 변하는가? 왜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무언가를 쉽게 받아들이고 이전의 무언가는 금방 버려버리는가? 이전의 무언가도 분명히 과거에는 새로운 것이었을텐데. 세상이 계속해서 변한다면 미래의 시점의 나는 그때에도 과연 내가 맞을까? 자아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내 선택을 믿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내 선택을 믿기가 어렵다. 정말 과거의 나를 믿을 수 있는가?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미래의 나보다는 적게 알 것이다. 지식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쪽에 선택을 위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여기서 선택은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러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보통, 다른 선택지들은 복수 선택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니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이 중에서 가장 나은 선택지는 무엇인지 비교해야 할 것이다. 나중에 안 좋은 선택지를 골랐을 때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 이 문장들에 공감하고 있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사람일 거라 추측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고 싶다. 우리는 왜 다른 선택지들을 확인하는 게 마음이 편할까? 개인적으로는 ‘틀린’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게 틀린 선택지라는 게 드러나면 과거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지를 고를걸, 하고 후회하고 좌절하게 될 것 같으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오직 일부 선택지만 확인하고 그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나라면 그 사람에게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조언해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할 거다. 그러나 내 저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보지 않은 다른 선택지들 중에서 더 멋진, 가장 좋은 선택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맞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후회하지 않는 태도이다.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선택지를 모두 확인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내가 선택한 것을 즐기는 것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은 언제나 빛나보인다. 그 말인 즉슨 내가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면 내가 가 본 길은 빛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가장 좋은 선택지였는지는 정말로 나에게 달렸다. 그러니까 마치 양자역학 같은거다.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으면 박스에 든 선택지는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고, 후회하면 그것이 가장 좋지 않은 선택지가 된다는 거다.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가! 단지 후회하지 않는 것만으로 실제로 좋음/나쁨에 상관 없이 가장 좋은 선택지가 된다니 말이다. 정말 간단한데 실천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서는 모든 것을 확인하고 가장 좋은 것을 찾기 위해 서로를 비교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정보를 잘 찾지 못하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늘 상기해야 한다. 많은 정보가 정말 좋은 것만도 아니라는 걸. 우리는 인간이라 그 많은 정보 중에서 우리가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다.

내가 한 선택을 더 적게 후회하자. 나보다 적은 지식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어떠한 근거로 무언가를 선택했던 과거의 나를 믿어보자. 만약 최악의 선택지였다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음으로써 또 다시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다.

그렇게 다시 나를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