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아, 프리렌. 네가 여행을 떠나는 계기는 바로 나야.
우리는 단지 무언가 시작할 만한 계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작은 계기로 시작되어 온전히 독일에서 보낸 1년, 2025년을 다시 되돌아보려고 한다.
- 1년간 회사 생활
- 1년간 독일 생활
- 생활 습관
- 마음가짐 변화
- 자유 LOG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
나는 올해 3월에 프로베이션을 마무리하고 정직원이 되었다. 첫 사회 생활이었다.
처음엔 회사라는 ‘진짜’ 사회 생활이 처음이다 보니, 무엇을 물어봐야 하고 무엇을 묻지 않아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다보니 조금만 질문하게 되었고, 그것은 꽤나 큰 패착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뒤로부터는 이전처럼 물음표 머신이 되었지만. 확실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졌고, 불확실을 해결하는 방법도 많이 배웠다.
중요한 이야기를 외국어로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은 꽤나 두려웠다. 발표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회사에서 외국어로 내가 이야기를 이끌어야 하는 것은 진심으로 피하고 싶었다. 그제서야 발표를 기피했던 내 팀플 조원들이 이해되는 것도 같았다. 특히 한 분이 발표하는 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는데, 이제는 퇴사하셔서 많이 아쉬웠다. 올해 벌써 우리 도메인에서 가깝게 지냈던 2명이 퇴사했다. 팀원을 떠나보내는 것은 늘 어렵고 아쉽다. 나는 이런 인연들을 이어가는 것이 미숙하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그렇게 멀어진 사람들이 될 것이니까.
인간관계는 솔직하게 서툴렀다.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야 하는 첫 기류가 숨 막혔다. 이름만 들어본 회사 사람과 태연하게 인사하고, 스몰톡을 하고, 웃을 수 있을 때까지 1년이 걸렸다. 여전히 나는 뻣뻣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많이 노력했더니 이 정도까지는 올 수 있구나 싶다. 예전부터 문제였지만 아직도 회사의 여성분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많이 어렵다. 가까운 팀원이 아니고서는 스몰톡이 쉽지 않다.
우리 팀원들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처음에는 내 원래 모습을 숨기고 착한 회사 사람으로 위장했었는데, 못해먹겠어서 그만뒀다. 그냥 내 모습대로 행동했는데도 신뢰받을 수 있었고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또 다시, 충분히 나 자신으로도 타인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들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이 불편하면 되겠나. 그들의 일도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힘들지 않은지,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불편한 부분은 어떻게 나아지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이 좋은 팀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올해도 우리 팀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는 것이 원대한 목표다.
올해는 회사에서 인정을 많이 받았다. 감사하게도 올해 10월에 승진을 했다. 진심으로 팀원들이 없었더라면, 매니저가 나를 굳게 믿어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믿어준 만큼 결과로 보답하고 싶다. 더 높은 직급이 된 만큼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과 책임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온전히 살아내서 증명하고 싶다. 더 멋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팀에서 카프카를 쓰는데 잘 몰라서 기호님, 태훈님, 로지랑 같이 스터디를 했다. 솔직히 중간에 흐지부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나는 벌금 60유로를 내면서까지 스터디 끝나는 날까지 열심히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공부한 것 뿐인데도 아는 내용이 많이 늘었어서 뿌듯했다. 1월에 휴가에서 복귀하면 이번에는 쿠버네티스 스터디를 같이 하려고 한다.
온전한 내 인생,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회사를 뺐을 때 내 인생에는 무엇이 남는가?
퇴근하면 늘 7시에 마트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러면 오빠랑 같이 오늘 저녁 먹을 것을 사러 가는 것이 루틴이었다. 한창 회사 일이 바빴을 때쯤에는 버스에서 내리고 걸어가다보면 녹초가 되었는데, 오늘 짜증났던 일들, 화나는 일들을 하소연하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왜 8시간 밖에 안 되는 회사 근무 시간이 내 남은 하루 5-6시간에도 영향을 끼쳐야 하는 거지?
생각해보니 불공평했다. 이제 퇴근했으니 이 시간은 온전히 내 인생인데, 이미 내가 충분히 노동력을 제공했던 그 시간이 끝나고 나서도 나는 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젠 더 이상 업무 시간이 아닐 때 일 걱정을 하지 않는다. 내 동료가 늘 나에게 “6시가 지나면 일을 절대 하지 말고 내일 마저 해라” 라고 강조하듯이. 6시부터는 회사를 뺀 내 인생이다. 회사가 절대 메인이 아니니까, 나는 그때 내 옆에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것에 집중해야만 한다. 그게 내 인생을 사는 방법이다! 일을 빼고도 내 인생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분이 남는다. 절대 일이 내 인생을 모두 지배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독일 생활 근황
독일에 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독일에서 한식을 제일 많이 먹었다. 지금까지 요리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여기에서 만든 것 같다. 한국에서도 못해봤던 겉절이, 보쌈, 감자탕에 베이킹도 열심히 하면서 여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타는 시작했었다가 더 재밌는 게임이 나와서 그만뒀다. 올해 다시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절대 포기한 게 아니고 잠깐 잊어버린 것 뿐이다… 러닝은 오빠의 성화로 드문드문하고 있다. 지금은 영하의 날씨라서 하고 있지 않지만, 똑같이 오빠의 성화로 매달리기와 스쿼트를 드문드문하고 있다. 아, 작년 겨울에 박스터에게 배웠던 (뭘 배웠다고 해도 될 지 애매하지만ㅎ) 스노보드를 타기 위해 체코와 오스트리아에 갔다 왔다. 체코에서는 사실상 살아 내려오기를 한 것 같고, 오스트리아에서 오빠랑 같이 private 레슨을 받으면서 많이 성장했다. 토사이드로 턴까지 성공했다. 이 느낌을 잊어버리기 전에 올해 2월쯤에 한 번 더 스노보드를 타러 가려고 한다.
올해 7월부터 수강했던 독일어 수업의 성과로 독일어 A1 시험에 합격했다!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지 않았음에도 합격했으니 A1 은 정말 누구든 붙여준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다 😅 2027년 초에는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비자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 즐겁다. 비자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해보면, 올해 임시로 받았던 1년 비자가 만료되어 거주 허가증을 받았다. 독일에서의 이런저런 서류 처리는 외국어라는 장벽으로 인해 정말 두려운 일이 되었다. 최대한 서류 처리를 할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사는 중이다. 한 번은 내 성과 이름이 반대로 되어 있어서 암트에 갔다온 적이 있는데, 그 분은 독일어로만 말씀하셔서 매우 긴장하며 준비한 독일어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잘 풀렸다. 인종차별 등 여러 차별을 받았다는 인터넷과 주변 사람들 경험담과는 달리 우리는 정말 평화롭게 지냈다.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행운이었다 생각한다. 어디에나 질 나쁜 사람들이 있으니 좋게좋게 생각하려 한다. 그것에 분개하고 속상해하는 것 또한 내 인생의 낭비나 다름 없으니까.
여행도 여러 곳 다녔다. 부모님이 베를린에 오셔서 베를린 투어, 프랑스 투어도 했다. 소오올직히 파리 여행은 너무 힘들었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 다음에 베를린에 또 오신다면 그냥 베를린에서만 있는 일정을 짜고 싶다. 처음으로 간 콘서트는 검정치마 콘서트였다. 어째선지 시간이 지날 수록 조휴일이 잘생겨졌다. 런던에는 요아소비 콘서트를 보러 갔다. 내가 돈 벌어서 해외 콘서트를 보러가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검정치마 콘서트보다 아는 노래가 많았고 형광봉에 관심이 생겼다 ㅋㅋㅋ
올해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예전보다 불안에 덜 휘둘리게 되었다. 여전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부정적인 감정 조절하는 건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덜 불안하고, 더 건강한 정신으로 살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뜬금없이 눈물이 나지도, 막막한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독일에는 놀랍게도 내가 가장 열심히 사는 사람 같다. 다른 사람들의 삶의 가치관이 한국의 친구들/일반인들과 많이 달라서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1년간 요양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나를 더 변화무쌍한 환경에 놓으려고 노력했다. 아예 몰랐던 옆 팀 사람들과 1박 2일 스키를 타러 가고, 팀원들과 영어로 보드게임도 하고, 안 해도 되는 영어로 발표하는 세션 자원하고,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놀았다. 충분히 노력했고, 충분히 많이 즐겼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예전의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차가 많이 차이나기도 하고, 최근에는 인스타 디엠이나 카톡을 자주 보지 않아서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는 크게 문제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지금은 중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2026년에는 삶에서 친구들도 잘 챙기려고 노력해보려고 한다.
이렇게 돌아보니 전반적으로 2025년을 즐겼던 것 같다. 나를 많이 돌아볼 수 있었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한 해였다. 2026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이 기대된다!